盤中 早紅柿 고와도 보이나다.

by 늘~푸른 posted May 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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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盤中 早紅柿 고와도 보이나다.
柚子 안이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기리 업슬니 글노 설워 하내이다.

쟁반 위에 놓인 붉은감(홍시)이 곱게도 보입니다.
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몸에 품고 돌아갈 만도 합니다만
소중히 품고 돌아가도 보시고 반가와 해 주실 분이 아니 계시기에 서러운 생각이 드나이다.  

이 시조는 “조홍시가(早紅枾歌)”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효(孝)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작가 박인로(朴仁老)의 나이 41세 때에 지은 것으로, 선조 3년 9월에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을 찾아가 잘 익은 홍시를 대접 받았을 때, 중국 삼국시대 육적(陸績)의 회귤(懷橘) 고사(故事)를 생각하고 돌아가신 어버이를 그리워하며 지은 노래이다.
귀한 음식을 대 할때 그것을 부모님께 갖다 드렸으면 하는 것은 당연한 심정이다. 그러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고 그것을 갖다 드리지 못하는 서운함을 노래하고 있다. 부모가 생존해 있을 때 효도하라는 風樹之嘆(풍수지탄)의 교훈이 담긴 시조이다.  이 시는 노계집(蘆溪輯)이나 해동가요(海東歌謠)에 실여있다.

육적(陸績)의 회귤(懷橘) 고사(故事) - 중국 삼국 시대에 오나라에 육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여섯 살 때 원술(삼국지에 나오는 원술)이라는 사람을 찾아갔다가 그가 내 놓은 귤 중에서 세 개를 몰래 품속에 넣었다가 하직 인사를 할 때 그 귤이 굴러 나와 발각이 되었다. 그 때 원술이 귤을 감춘 사연을 물었더니, 육적은 집에 가지고 가서 어머님께 드리려 하였다고 하므로 모두 그의 효심에 감격하였다고 한다.
이 일을 회귤고사, 또는 육적회귤이라고 부르며, 부모에 대한 효성의 뜻으로 쓰인다.

박인로(朴仁老 : 1561-1642)는 명종 16년 경상도 영양(영주)에서 태어났으며 무신이자 시인이며,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이라 불렀다.
그는 도학과 조국애와 자연애를 사상적 바탕으로 천재적인 창작력을 발휘하여 국문학사상 많은 작품을 남긴 이로,  그는 임진란에 수군으로 활약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우병사 성충문 막하에 들어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으며, 또한 우병사의 명으로 태평사를 지어 사졸(士卒)을 위로한바 전쟁 중에도 시정과 우국애가 넘치는 작품을 썼으며, 그가 남긴 작품으로서는 가사로서 태평사, 선상탄, 사제곡, 누항사 등이 있으며, 시조로서 전하는 것이 60여수에 이르는데, 그 중의 절반이 사친가(思親歌)와 오륜가(五倫歌)로서 수신하는 길을 강조한 것들이다. 무인다운 기백과 신선미로서 화려 웅장한 시풍(詩風)을 이룩했다고 알려져 있다.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시가인(詩歌人)으로 불린다.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