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주일 강론

by 김수식(프란치스코) posted Nov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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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오늘은  평신도의 소명을 되새기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격려하는 53번째 맞이하는 평신도 주일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평소 참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또 반성할 점은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교회법적으로 평신도란 사제가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수녀님과 수사님들 역시 교회법상으로는 평신도에 포함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교회가 교회울타리 안에서 교회울타리 밖의 세상으로 나오게 된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공의회에서 채택된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중 (사도직 활동에서 ) 평신도에 관한 논의가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교령에 의하면 평신도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곧 교회이며, 따라서 평신도은 성직자와 함께 교회를 구성하는 공동체이자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 존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교회는 더 이상 하느님의 백성을 심판하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라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평신도는 교회 안에서 단순한 협력자가 아니라, 공동책임자로서 임무를  다해야 하며, 이에 따라 교회와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여 자기 역활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평신도의 사도직의 소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직은 사도로서의 직무를 말합니다. 사도란 예수님의 삶을 살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직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행동으로 증언하는 사도의 직무나 소명을 말합니다. 최초의 사도는 예수님의 제자인 12사도로서  사도는 전통적으로는 파견을 의미  합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음과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꾼으로 파견됩니다. 즉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소명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도직은 성품성사나 특수한 파견 예식을 통해 부여받는 성직자의 사도직과 일반 신자들이 봉사 활동 등으로 실천하는 사도직으로 구분됩니다.

 

성직자의 사도직은 예언직(교도권)  사제직(신품권)  왕직(사목권)등이 있으나 , 평신도의 사도직은 예언직(복음화의 소명)  사제직(미사공동 집전자로서 참여의 의무) 왕직(교회봉사의 소명)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평신도는 어디에서 어떻게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까요?

먼저  평신도가  속한 곳은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교회 안에 몸담고 있지만 고유한 삶의 자리는 세상속입니다.

 

따라서 세상속에 파견되어 세상을  누룩처럼 북음화 시키는 세상속의 교회인 평신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파견받는 사도로서 평신도가 수행하는  직무 , 곧 평신도 사도직은 한편으로는  교회 성장과 발전에 협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신도 고유의  자리인 세속 일에 종사하면서 세상을 성화시키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이중의 소명을 지니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신도가 교회와 세상 안에서, 사도직을 수행하지만 동일한 신앙적 양심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생활 따로 신앙 따로 행동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신앙과 생활의 일치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대부분의 평신도가 교회의 가르침에서 비현실적이라고 느끼거나 신앙과 삶을 일치하는데 어려움을 겪어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때 일수록 미사 전례에 적극 참여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교회 일을 한다는 이유로 또는 영성 생활을  심화한다는 이유로 또는,  가정을 돌보지 않거나 다른 세속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직장과 가정과 사회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교회에서는 사도직 직분을 어떠한  모습으로 수행해야 할까요? 즉 어떤 자세로 봉사에 임해야 할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예수님을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나귀의 모습에서 그것을 배울 수 있겠습니다.

 

나귀의 세 가지 모습에서 봉사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구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모습은 사람들이 나귀 자신을 보고 환호한다고 생각하며 당당하고 우쭐되며 걸어가는 나귀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 모습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신기해하며 어리둥절하게 생각하는 나귀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 모습은 온전히 예수님만이 보이도록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고개를 숙이며 묵묵히 걸어가는 나귀의 모습입니다.

과연 우리는 교회내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사도직 직분을 수행하고 있을까요?

 

그분은 높아져야하고 우리는 한없이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평신도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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