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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수님을 힘들고 어려울 때 힘을 주시고, 우리를 언제나 어루만져 줄 분으로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그분을 우리가 도와드려야 할 신세이다.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는, 헐벗고 굶주린 이가 바로 당신이라기에.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나. 너무나 엄청나다.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가 바로 당신이시라니. 우리가 살면서 수없이 지나쳤던 가난한 이들이 다 예수님 당신이었단다. 기절초풍 할 노릇이다.

 

그래서 옛 성인들께서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깨달았다는 게 이제 겨우 실감난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온전히 가난한 이들께 바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주님’을 가까이는 모셔야 할 게다. 방방에 십자고상만 있다고 정녕 주님을 모시는 게 아니다. 매일 주님을 부르며 기도한다고 그분과 함께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보다 못한 작은이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어 줄 때에야 비로소 그분과 함께하는 것이리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날에 우리를 심판하실 때에 어떠한 죄를 저질렀는지를 헤아리시기보다는 우리가 타인을 위해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를 카운터 하신단다. 또 얼마나 이해타산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선행을 베풀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따라서 죄를 짓지 않아 용서를 청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 보다는 얼마나 진정한 마음으로 작은이에게 다가갔는지에 그 참가치를 두자.

 

우리는 막연히 생각한다. ‘얼마나 계명을 잘 지켰는가? 얼마나 많은 헌금을 내었는가? 얼마나 죄짓지 않고 살았는가?’ 이러한 것이 저 세상 어딘가에서 우리가 받을 최후의 심판의 기준일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그러한 것은 한 마디도 없다. 교회의 직책에 대해서도, 숱한 이들께 전도한 건수 숫자수도 없다. 오직 이웃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그들에게 과연 당신 대하듯이 했는지 만 따진단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실 때에 어떠한 죄와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헤아리시기보다는, 타인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었고 또 얼마나 이해타산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선행을 베풀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구나. 그래서 저지른 죄보다는 얼마나 이웃을 위하고 또 정녕 진정성으로 선행을 했는지에 그 가치를 두어야겠다.

 

가끔 어떤 이는 영생과 심판에 관해 이렇게 말하더라. ‘영생은 죽음 뒤에 시작되는 것이 결단코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타인의 기쁨과 고통에 공감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에만 만족한 채 매일 매일을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바로 그 순간의 삶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실 일이 일체 없으리라. 자신이 만든 스스로가 홀로된 모습인지, 아니면 그 누군가와 공감하는지를 곧장 아는 그때가 바로 심판이리라. 그래서 이미 자신이 심판자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참 의미 있는 풀이이다. 그렇다. 지금 베푸는 선행이야말로 악행을 이겨 내고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마음의 초점이 늘 악행에만 머무르기에 평생 악행과 싸우는 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리라. 그러나 선행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이는 자신의 온 삶이 선을 쌓으려는 의지로 향하기에 어느덧 자신의 삶이 긍정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될게다. 그 언젠가 삶의 마지막 심판 때에 하느님께 의로운 이로 인정받으려면 지금 이 시각 악을 피하려하지 말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작은이를 찾으려는 부단한 의지에 있음을 알아야 할게다.

 

그때나 지금 이 시각 그 기준은 이웃에게 얼마나 희사했는가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가장 평범하고 작은이들께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가가 기준이 될게다. 곧 보잘것없고 굶주린 이들께 먹을 것을, 목마른 이들께 마실 것을, 나그네와 병자들을 살폈는지가 되리라, 그들을 예수님처럼 귀하게 여겨 따뜻이 맞는 사랑실천으로 우리믿음을 증언하자. 최후의 심판은 그때가 아닌 지금 이 시각에도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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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은애 2016.02.17 19:01

    자비의 하느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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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은애 2016.02.17 19:01

    자비의 하느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 멘
  • ?
    가별 2016.02.20 13:30
    가장 여리고 힘 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
    그러기에 주님의 말씀은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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