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15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0||0

여든두 살의 아버지와 쉰두 살 된 아들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때 참새 한 마리가 창가로 날아들었다. 노인이 “저게 뭐냐?”란다.

아들은 “참새예요, 아버지.”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조금 뒤 아버지는 “저게 뭐냐?”라며 다시 묻는다. 아들은 “참새라니까요.”라고 말한다.

조금 뒤 아버지는 “저게 뭐냐?”라며 또 묻는다. 세 번째다.

아들은 짜증을 낸다. “글쎄, 참새라니깐요.” 한참 있다가 아버지는 또 묻는다. 네 번째다.

“저게 뭐냐?” 아들은 그만 화를 내었다. “참새라고요! 왜 자꾸 같은 질문을 반복하세요?”

 

한참 뒤였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 묻고 찢어진 일기장을 들고 나왔다.

그러곤 일기장을 펴서 아들에게 읽어 보란다. 아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읽었다.

거기엔 자신이 만 세 살이었을 때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오늘은 참새 한 마리가 창가로 날아들었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라고 물었다.

나는 참새라고 답해 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스무 번을 묻고 또 물었다.

아들을 안으며 끝까지 다정하게 답해 주었다, 참새라고.

같은 답을 스무 번 해도 즐거웠다. 새로운 것에 관심 갖는 놈이 사랑스러웠다.”

 

세상의 부모 마음은 모두 같으리라. 예수님께서도 이런 마음을 지니셨을 게다.

그분께서는 ‘수종 앓는 이’를 아버지의 시선으로 보셨지, 심판관의 시선으로 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라고 물으신 다음, 거침없이 병자를 고쳐 주셨다.

 

물에 빠진 생명을 건져 내려는 인간의 타고난 연민을 과연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우물에 빠진 이는 물론이고 물에 빠진 소라도 끌어내는 것은

계명을 거론하기 전에 인간이라면 당연히 저절로 하게 되는 행동일 게다.

그러기에 물에 빠진 생명을 살려 낼까를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조차 없으리라.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한지 아닌지를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사이들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들 스스로도 당연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도 그들은 안식일 계명을 내세우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려 든다.

 

율법에만 매달리면 율법만 보이리라. 사람도 보이지 않고 하느님도 보이지 않을 게다.

율법의 ‘노예’가 된 것이다. 안식일은 그분께 충실하고자 다른 일은 ‘잠시 접어 두는 날’이다.

그런데 ‘본래 의도’는 생략하고 ‘껍데기’만 따진다.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고 있는 셈이랄까.

삶의 유연성을 상실하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된다.

 

안식일은 좀 여유를 두고 좀 쉬자. 쉰다는 것은 다음에 할 일을 제대로 하려는 준비이다.

쉴 때는 주님께서 쉬신 것처럼 거룩히 지내야 할게다.

거룩하게 지낸다는 것은 생명과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쉰다는 것은 오로지 그분께서 인간에게 내려 주신 축복이니까.

 

우리는 주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제대로 쉬고나 있을까?

제대로 쉬는 이는 결국 제대로 일하는 이 이다.

휴식을 취하면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쉬지 못하고 일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는 율법적인 것에만 얽매이지 말고,

그분께서 가르쳐주신 올바른 사랑과 감사를 신앙인의 사명으로 늘 명심하자.  

http://blog.daum.net/big-llight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98 심판은 그때가 아닌 지금 이 시각에 / 사순 제1주간 월요일 3 file 늘벗 2016.02.16 135
597 자기다움을 회복하는 정화의 시기 / 재의 수요일 1 늘벗 2016.02.10 137
596 신부님의 눈물 1 늘벗 2016.02.09 163
595 아마도 그런게 인연인가 싶습니다, 4 심은애로사 2016.01.22 157
594 축카 합니다, 1 심은애로사 2016.01.21 216
593 이름난 가톨릭 신자/ 악마를 겁내지 마라 2 이반 2016.01.16 147
592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심은애로사 2016.01.16 111
591 묵상&기도 2 심은애로사 2016.01.15 114
590 포맷으로 모두의 참여를! 1 늘벗 2016.01.14 118
589 수고많으셨어요^^ 심은애로사 2016.01.09 136
588 새해가 되었다는 의미 file 늘벗 2016.01.05 134
587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삶/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1 file 늘벗 2015.12.29 137
586 단풍드는 날 1 이반 2015.12.15 168
585 단풍 지는 날 늘벗 2015.12.16 223
584 2015년 예비자 교리반을 마치면서(요한마타) 1 요한마타 2015.12.07 155
583 사랑에 녹는 용서 file 늘벗 2015.11.06 136
» 믿는 이의 사명인 사랑과 감사를/연중 제 30주간 금요일 file 늘벗 2015.10.30 158
581 8차 참 신앙인의 길을향한 성경 피정 file 청년성서모임(에파타) 2015.09.07 163
580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오늘의 복음/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늘벗 2015.08.10 192
579 성모님께 드리는 편지 3 늘벗 2015.05.29 615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40 Next
/ 40
미 사 시 간
요 일 오 전 오 후 저 녁
   
    19:30
10:30  
    19:30
10:30  
  18:00
주일 10:30 19:30

51331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남12길 16 산호동성당
전화 : 055-241-6748 , 팩 스 : 055-242-6748

Copyright (C) 2019 Diocese of Masan. All rights reserved.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